본문 바로가기
리뷰/읽고

<오래된 기억들의 방 : 우리 내면을 완성하는 기억과 뇌과학의 세계>

by 고로쇠모르쇠 2022. 10. 28.

 

<오래된 기억들의 방 : 우리 내면을 완성하는 기억과 뇌과학의 세계> 

지은이 베로니카 오킨 | 옮긴이 김병화 | RHK

http://aladin.kr/p/fPeeG

 

오래된 기억들의 방

우리 내면을 완성하는 기억과 뇌과학의 세계를 깊이 있게 파헤친 가장 최신의 뇌과학 연구서다. 30년 이상 기분과 정신병적 장애를 연구해온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들을 만나며 기억에 대

www.aladin.co.kr

 

The Rag and Bone Shop 이라는 매력적인 원제의 작품.

책 속에서 해당 표현은 마음의 폐품 가게 the rag and bone shop of the hearts 라고도 번역된다. 

이는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의 시 <서커스 동물들의 탈주>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고도 한다.

'모든 감각은 그 자체로 기억'이라는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말로 출발하여, 감각을 통해 뇌 속에 기억으로 구성되고 기억이 쌓여 '나'라는 자아를 만들어내는, 그 연결고리로 이해된다. 

 

"기억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작품이 흥미로웠던 것은 정신질환에 의해 실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되는 기억을 과연 무엇으로 볼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를 던진다는 점이다. 기억의 대상을 잃어버릴 때, 기억을 잃어버릴 때 뿐 아니라 기억의 대상 또는 기억 자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 할 때 기억은 무엇이며 이를 기억하는 주체, 나 자신은 무엇이 되는가 하는 물음이다. 

 

살고 배우는 것은 감각과 기억과 감정의 끝나지 않는 춤이다. 외부 세계에서 들어오는 감각은 감각 경험의 피질 지도 속에 엮여 들어가며, 사건은 감정 회로의 편도체-뇌섬엽 베틀 속에 계속 엮여 들어간다. 결국, 감정이 없다면 기억은 무엇이겠는가? 인간적 의미도 없는 경험의 끝없는 레퍼토리일 뿐이다. 기억 없는 감정은? 욕망의 이런저런 대상 사이에서 얄팍하게 날아다니는 일에 불과하다. 감정이 없으면 우리 심장은 부서지지 않고 슬퍼하지 않겠지만, 또 우리가 매력을 느끼고 잠시라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풍요로운 기억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촌들을 만날 때 떠오르는 그런 종류의 기억은 없을 것이다. 

- 121p

 

뇌과학 분야는 이제 마르셀 프루스트가 신경학의 발전보다 먼저 정립해두었던 서술을 뛰어넘어 연구되고 있는 최첨단 분야 중 하나다.

그러나 대중이 삶에서 실질적으로 느끼는 이해와는 그 격차가 여전히 크다. 

때문에 이 책은 분명히 전문의학서적이 아닌 대중서이지만 생소한 개념이 다수 등장한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것은 현상에 대한 정확한 근거를 가질 때, 사고와 이해는 확장되고 배가된다는 것이다. 

뇌과학을 통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가능성을 경직된 사고에 가두지 않는다. 

종잡을 수 없으며 가늠할 수 없는 인간의 창조성에 되려 견고한 근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 "상상은 기억의 줄기에 핀 꽃"이며, 우리는 첫 시작 지점인 베토벤 현상으로 되돌아간다. 귀가 들리지 않는데도 이제껏 작곡된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의 놀라운 재능은 고도로 발달된 청각적 기억이 고도의 기능을 가진 전두엽의 지휘자와 상호작용하는 데서 나온 결과물이다. (중략) 살아 있음의 경험이란 끝없이 변화하는 매우 정교하고 무한히 가지를 치는 신경세포들의 네트워크를 넘는 어떤 것이라고, 자신을 넘어서고 기억을 넘어서고 심지어는 상상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이 느낌이 바로 당신을 '그저 자신의 두뇌' 이상의 존재인 듯 느끼게 해주는 신경 네트워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추상이 이룬 궁극적인 업적이다. 그것은 자기 표현, 비슷하게 연결된 다른 인간들의 세계에서 통합적으로 현존하는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의식이다. 

- 231p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뇌과학에 크게 한 걸음 다가가게 해주는 책이다. 

또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버지니아 울프, 예이츠, 존 버거, 사무엘 베케트, 올리버 색스, 마르셀 프루스트 등의 작가들과 그 걸음을 함께 하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어진다. 

 

개인적으로 이전에 읽었던 뇌과학 대중서 중 하나인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를 읽었을 때,

어딘지 모르게 간지러운 곳이 확실히 긁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은 데에 비해 이 책은 그런 아쉬움이 없었다. 

 

로널드 랭... (중략) 그의 치료 실험이 비극으로 끝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정신 이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정신이상으로 인해 붕괴된 자타 경계를 더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역의 강화, 이전에는 없던 '자신을 정당화해주는 확실성'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 206~207p

 

신경학자이자 직접 환자들을 만나는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서 그녀의 신념과 책임감을 엿볼 수 있다. 

한국에서라면 특히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경우가 많으며 이를 치료하는 시설에 대한 인식 역시 그러하다. 

뇌과학, 신경의학에 근거하지 않은 심약한 정서,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정서상의 문제가 아닌 현상의 문제 중 하나다. 

 

때문에 베로니카 오킨은 전문가의 시선으로, 만나는 환자들을 감각과 기억의 주체로서 바라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들 모두가 붕괴된 경계를 일으키고 다시 세계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킨은 뒤엉킨 상태의 환자들을 그들의 실재하는 기억과 감각하는 능동적 주체, 재건될 수 있는 하나의 세계로 바라보는 것이다.

뇌과학에 의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결코 정상성과 구분되거나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이러한 시선이 책 전반에 따뜻함을 자아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모든 것이 점차 너무나 생생해지고, 우리는 모든 것의 중요성을 이해한다. 모든 것이 뭔가 고통스럽고 지루하게 되풀이 된다. 그것이 노년이다. 점차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게 되고 그러다가 죽는다. 
이 문장에 내가 공감한 이유는 아마 세월이 흐르고 삶의 패턴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본능적으로 두려움 섞인 예감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삶이 가진 가능성의 감각에서 어쩔 수 없는 예견으로, 무언가 '고통스러운 지루함'으로 전환하게 되리라는 예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두려워하던 정체 상태를 예견하지 않고 현재의 풍부한 감각적 세계를 감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감각의 세계로 돌아간다. 젊은 시절처럼 거칠 것 없는 돌진은 아니지만 풍부하고 섬세한 세계, 오로지 그 속에 존재한다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원하는 게 없는 그런 세계로. 

- 230p

기억은 이 책에서 다수의 예술가를 언급하듯 많은 철학자, 예술가에게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다양하게 다뤄진다. 

그와 관련하여 인상 깊게 읽은 희곡 한 편을 함께 곁들일 책📚으로 남겨본다. 

영국 작가의 희곡으로 다행히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있다. 

 

 

인코그니토

1950년대 초를 배경으로 세 가지 이야기가 회전하면서 조금씩 변주된다. 뇌의 기억 저장이 불가능해진 영국 배스의 헨리 메이슨, 몇 년 뒤 미국 뉴저지의 아인슈타인 박사 부검의인 토마스 하비,

www.aladin.co.kr

 

'리뷰 >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0) 2022.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