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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읽고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by 고로쇠모르쇠 2022. 10. 25.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지은이 마르그리트 뒤라스  |  옮긴이 윤진  |  민음사 

http://aladin.kr/p/s28u4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이자 독자적인 문체와 작품 세계를 창조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정수가 담긴 작품집. 표제작 글은, 수수께끼 같은 뒤라스의 문학 세계를 작가 자신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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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거리 헤매기 - 버지니아 울프 산문집> 다음으로 읽어본 민음사의 쏜살문고 시리즈.

두께가 얇아서 쏜살같이 읽을 것 같겠지만 그렇진 않다. 밀도가 높아서일까?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여름비>가 너무나도 좋았어서 망설임 없이 들게 되었다. 

 

프랑스의 글은 대체로 어렵지만 그만의 감성이 있다. 

마치 파리를 처음 여행할 때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게 된 칭찬들로 머릿속에 엄청난 낭만을 그리지만 막상 파리에 당도하면 맞닥뜨리는 전혀 다른 풍경들 같다고 해야할까? 울적한 날씨와 생각보다 음울한 분위기. 처음에는 낭만을 스스로 찾고 발견해야만 하지만 이후에는 거기에 흠뻑 젖게 되는 경험 같은 느낌. 이게 무슨 맛이야, 싶다가 어느 새 익숙한 사고방식을 벗어난 서술과 감상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나는 그렇다. 

 

  내가 지켜보던 파리가 죽었다. 서서히. 발버둥을 치다가 마지막 경련을 일으켰다. 그런 뒤에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오 분 내지 팔 분. 긴 시간이었다. 절대적인 공포의 순간, 다른 하늘, 다른 행성, 다른 장소를 향해 가는 죽음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그렇다. 이렇게, 파리의 죽음은 문학으로 옮겨졌다. 저절로 쓰게 된다. 파리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쓴다. 그럴 권리가 있다. 
...
  글이 거기까지, 죽어 가는 파리한테까지 가는 것도 좋다. 그러니까, 쓰기의 두려움을 쓰는 것이다. 언제 죽었는지 정확한 시각이 기록되는 순간, 죽음은 이미 다가갈 수 없는 것이 된다. 보편적인 중요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상의 모든 삶이 표시된 지도 위에 정확한 한 지점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36-38p)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속 산문들도 친절한 서술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 수도 있다. 어렵지는 않다. 

다만 계산되지 않은 것 같은 반복되는 문구들, 연속되지 않는 것 같은 문장들의 배열은 그것이 주는 각기 다른 이해가 모두 가능하게 만든다.

 

  나는 이곳에 혼자 있을 때는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 꽤 잘 치지지만, 거의 치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 집 안에 나밖에 없을 때는 피아노를 치면 안 될 것 같다. 감당하기 너무 힘들다. 갑자기 의미를 띠는 것 같아서다. 그런데 글쓰기만은 개인적인 어떤 경우에 의미를 띠어도 된다. 글은 내가 다듬고 내가 쓰니까. 그런 때 피아노는 다가갈 수 없는, 아마도 나로서는 영원히 다가갈 수 없는, 멀리 있는 물건이다. 내가 만일 직업으로 피아노를 연주했다면 책을 쓰지는 못했을 거다. 확신은 없다. 안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떤 경우에도, 심지어 음악을 병행하더라도, 글을 썼을 것 같다. 읽을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책들. 대상 없는 사랑을 하는 미지의 누군가만큼이나 모든 말로부터 멀리 있는 책들. 그리스도 혹은 바흐의 사랑. 이 둘은 아찔할 만큼 놀랍도록 동등하다. 

(15p)

 

글에 대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같은 거장의 생각은 그와의 거리감을 좁혀준다. 

물론 그 정도의 깊은 고뇌를 어느 한 분야에 갖고 있으면서 그걸 읽기 쉽게 풀어내기란 보통 일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때문에 작품을 읽고 싶지만 부담스럽거나 작가에 대해 좀더 친근감을 느끼고 싶은 때에는 작가의 에세이, 산문을 먼저 읽는 편이다. 

 

  그런 강렬한 감정이 일면 어디엔가에 이르고 싶어진다. 아마도 밖으로부터 쓰기, 밖에서 보이는 대로 묘사하기, 그 자리에 있는 것만을 묘사하기. 그 어떤 것도, 아무리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도 지어내지 말기. 그 어떤 것도 절대 지어내지 말기. 죽음을 따라깆 말기. 그러니까 죽음을 그대로 두기. 절대로, 이번 한 번만, 그쪽을 쳐다보지 말기. 

(61p)

 

숨쉬듯 붙은 고독과 고독을 느끼는 자신에 대해 동정심 없이 바라보는 시선이 좋다. 

그것은 아마 고독과 마찬가지로 죽음이라는 감각이 삶 속 도처에 숨쉬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마르그리트 뒤라스라는 인물은 올리비아 랭의 <이상한 날씨>의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에서도 등장한다. 

알코올 의존증에 빠진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상한 날씨>에서 가장 인상 깊은 에세이 중 하나다. 

 


함께 곁들일 만한 책 📚

 

 

여름비

공쿠르 상 수상 작가이자 프랑스의 대표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여름비』가 소설가 백수린의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여름비』에는 뒤라스의 작품에 등장했던 주제들이 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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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거리 헤매기

쏜살문고. 버지니아 울프의 내밀한 기록을 가려 뽑은 산문집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믿는 이들에게, 인생의 먹잇감 역시 나라고 얘기한다. 가끔은 인생의 눈을 피하고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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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날씨

전작 《외로운 도시》에서 올리비아 랭은 고독을 개인의 내밀한 문제로 시작해 사회적 소외로 확장하며 끝을 맺는다. 이 책은 그 연장선에서 더 잰걸음으로 차별과 소외에 저항한 예술들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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